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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헬스조선 건강칼럼] 대장암 치료수준과 스티브 잡스 날짜 2013.04.24 11:27
글쓴이 운영자 조회 2383
    건국대학교병원 외과 / 황대용 교수

 

대장암 치료수준과 스티브 잡스

- 황대용 교수의 튼튼대장습관!

 

어느 한가한 주말 오후 미국에 있는 생면부지의 사람으로부터 메일을 받았다. 내용인즉 본인은 재미 교포로 남편이 3년 주기로 대장내시경을 받아왔다고 한다. 이번에 남편이 작은 크기의 직장 폴립을 제거하였는데 거기서 암이 발견되었다고 하여, 수술을 받으려고 다른 병원에서 다시 그 부위를 확인했으나 찾을 수가 없다고 하니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내용이었다.

이러면 너무 많은 경우의 수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일일이 메일로 답을 주고받기에는 한계가 있다 싶어 답 메일로 직접 내 휴대전화기 번호를 알려주었다. 아니나 다를까 약 20~30분 뒤에 당사자인 남편이 미국에서 직접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환자는 우리나라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간 지 약 30년 정도 된 미국 시민권자로 현재 미국에서 대학교수로 재직 중이었다. 나이는 50대 중반 이후로 50대부터 약 3년 주기로 담당의사로부터 대장내시경 검사를 계속 받아왔다.

이번에 직장에서 작은 폴립을 제거하였는데, 맨 처음 결과를 알려줄 때는 양성 혹으로 이상이 없다고 했다가, 일주일 뒤 다시 전화를 걸어 암이 의심된다고 조직검사결과를 뒤집었다. 그러고 나서 큰 병원에 의뢰해 줄 테니 그곳 전문의료진에게 진료를 받아보라고 했다.

문제는 의뢰된 큰 병원의 의료진이 다시 대장내시경 검사를 시행하였으나 이전 병원에서 암으로 진단된 직장 폴립을 떼어낸 자리를 전혀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더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았으나 역시 찾지 못하자, 담당의료진은 환자에게 직장을 적당한 범위 내에서 떼어내자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환자는 떼어낸 위치도 정확히 알지 못하는데, 적당량 부분의 직장을 절제하자는 것에 충격을 받고 전전긍긍하던 차에, 부인이 우리가 운영하는 카페를 통해 내 메일 주소를 알아서 연락을 취하게 된 것이었다.

그동안 검사받은 자료들을 환자 본인이 모두 가지고 있다고 하여서 그것들을 우선 메일로 보내달라고 하였다. 자료들을 검토해 보니 3년 전에 시행한 대장내시경 검사에서 지금과 같은 위치로 보이는 부분에 폴립이 있어 조직검사를 위해 제거하였고, 그 위치를 대장모식도에 표기한 기록이 있었다.

대장내시경 사진도 이번 것과 3년 전에 찍은 폴립의 사진이 거의 유사한 위치로 판단되었다. 그러나 당시 조직검사결과는 암이 아닌 선종으로 나와 있었다. 따라서 그 부위가 이번과 같은 위치라면 이번에 찾아야 할 암이 있던 직장 폴립의 위치 확인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여, 환자 본인이 직접 담당의사에게 이 문제를 물어보도록 부탁하였다. 그런데 정작 담당의사는 본인이 내시경 소견을 기술하고 그림에 위치를 표기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당시 기록과 이번 기록에서 항문으로부터 거리가 약간의 차이가 있다는 이유로, 그 부분이 같은 부위가 아니라고 강변하였다 한다. 아마도 같은 위치라고 하면 3년 전 그 부위의 조직검사가 실제로 양성 종양이 아니고 암이었을 가능성도 생각하고, 혹시 이제부터 발생할지도 모르는 법적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조금은 과도한 방어 태세로 대응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지금 닥친 문제는 예전 그 부위가 암이었나, 아니었나 하는 것이 아니라, 이번에 제거된 폴립 위치가 어디이며, 왜 다시 확인되지 않는가 하는 것이었다. 이번 조직검사결과 지에는 떼어낸 폴립이 직장의 점막 하층(점막층 다음 아래층)까지 포함하고 있고, 혹 주위 림프관(림프가 지나는 혈관과 같은 길)에 암세포가 보이지 않는다고 쓰여 있었다. 이러면 떼어낸 혹의 깊이가 점막 하층까지로 비교적 깊어서 아무리 시간이 지났다 해도-그때는 마지막으로 폴립을 제거 받고 난 뒤 이미 한 달여가 지난 시기였다-상처 흔적이 남아있어야 하는데, 지금 그 부위를 대장내시경으로 찾지 못해 문제가 발생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점막 하층까지 떼어냈다는 것을 직접 우리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미국병원에 조직검사슬라이드 차용을 요구하여 국제배송으로 전달받았다. 대장암 병리진단을 전담하는 동료 의사와 같이 슬라이드를 확인해보니, 암의 깊이가 점막 하층까지 침범한 것은 보내온 조직검사결과 지와 동일 소견이었는데, 암세포가 보이지 않는다고 쓰여 있었던 림프관 내에 암세포가 우리 현미경 시야에 들어왔다. 이 소견은 종양 주위 림프샘으로의 암 전이 가능성을 시사하는 소견이므로 직장을 절제해야 하는 대상이 된다. 이제 점막 하층까지 떼어낸 것이 확인되었으므로 조직검사 상처는 확실히 존재하리라 판단되었다. 항문으로부터 떨어진 거리는 폴립을 제거하기 전의 대장내시경 사진을 여러모로 분석하여 직장의 어느 정도 위치에 있을 것인지를 미리 판단하고 예측하였다.

이렇게 우리가 조사한 모든 결과를 종합하여 미국에 있는 환자 본인에게 상세히 알려주었다. 환자는 우리가 본인의 진료과정에 접근한 이유와 모든 과정을 잘 이해하면서도, 앞으로 치료를 어떻게 받아야 할지 결단을 내려야 하는 시점이 되었다. 환자의 의구심은, 미국에서도 두 번에 걸쳐 여러 시간 동안 대장내시경으로 찾지 못한 부위를 과연 우리나라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결국, 본인은 한국에 나오기로 최종결정하였고, 귀국과 동시에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기로 하였다.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기 직전까지도 과연 그 부위를 찾을 가능성이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 계속 의구심을 품고 있었다.

실제 우리가 예측한 대로 검사 시작 5분도 채 되지 않아 직장 폴립을 떼어낸 상처 흔적을 쉽게 찾아냈다. 그 부위에 표식한 뒤, 항문은 보존하고 직장 폴립을 떼어낸 부위를 포함하여 직장을 제거하는 수술을 곧바로 시행하였다. 그 이후 별문제 없이 잘 회복되고 나서 환자의 고민은 “우리나라에서는 이렇게 쉽게 찾는 것을 미국에서는 왜 찾지 못하였을까?”로 변하였다.

이번 환자는 환자를 미리 여러모로 세밀히 분석 및 종합하여 판단하고, 해상력 좋은 대장내시경 기구를 적절히 잘 활용하여 최종치료인 적절한 수술까지 잘 받아 환자와 의료진 모두 다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은 경우이다. 환자가 진료를 받은 미국병원은, 환자의 전 진료 과정에 대한 필요한 분석들을 놓치다 보니 제대로 환자 상태를 판단하지 못하였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수술할 부위도 제대로 확인하기 어려웠고, 그런 상태로 최종치료인 수술에 대해 환자의 이해와 동의를 구하기도 어려웠다. 또한, 의료기기 측면에서 우리보다 비용 대비 효용 측면의 경제성을 너무 강조하다 보니, 의료기기들의 교환주기가 상대적으로 길어져 품질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점도 진단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의료 수준이란 하드웨어인 의료기기의 수준과 발전에도 달렸지만, 환자와 연관된 모든 자료를 자세히 잘 분석하고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정확한 치료 방침을 세우는 소프트웨어적 측면이 더욱더 중요하고 이것이 의료수준을 향상한다. 물론 수술 측면의 의료 수준이란 이 환자의 경우, 기본적으로 직장암에 대한 수술 원칙을 잘 지켜 수술을 잘해야 하는 것은 더 말할 나위도 없겠다.

인간의 오감과 직관을 분석하여 소프트웨어로 구현하고 여기에 최적의 하드웨어로 조화를 이루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 스티브 잡스의 혜안이 새삼 눈앞에 어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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