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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헬스조선 건강칼럼] 대장암 표적치료제와 칠레 날짜 2013.05.13 16:28
글쓴이 운영자 조회 2521
    건국대학교병원 외과 / 황대용 교수

 

대장암 표적치료제와 칠레

- 황대용 교수의 튼튼대장습관!

 

어렸을 적 칠레에 이민을 가서 살고 있다는 40대 후반의 남자 환자가 대장암 치료에 대한 문의로 내게 이메일을 보내왔다.

 

사연인즉 환자는 우리 몸 왼쪽 복부 윗부분에 위치한 비장근처에 위치한 대장암과 더불어 복막파종(뱃속의 장기를 둘러싸고 있는 복막에 암 세포가 흩뿌려진 것처럼 보이는 암 전이의 한 형태)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고 하였다.

 

대장암 진단 이후 대장이 암으로 인해 막히는 것을 해결하기 위하여 스텐트(저절로 펴지는 금속 철망)삽입을 시술 받고, 표적치료제 중 하나인 아바스틴(암의 혈관형성을 억제하는 약제)과 폴피리(대장암 항암제인 이리노테칸과 플루오로 우라실이라는 약제를 같이 투여하는 약제이름의 줄인 말)를 투여 받고 있다고 하였다. 이후 동일한 약제로 여러 차례 주사를 투여 받았는데 칠레의 치료받고 있는 병원에서 찍은 CT등 엑스레이 사진을 한국에 살고 있는 본인의 동생에게 보내서 나에게 전달해 주면 본인의 상태가 어떠한지 좀 설명하여 줄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나는 환자가 외국에 오랫동안 나가 살고 있는 우리교민으로서 그 동안 얼마나 고생이 많았을까 하는 생각에 당연히, 그리고 흔쾌히 수락하였다. 그리고 얼마 뒤 동생에게 보내온 CT사진을 우리 대장암센터 영상의학과 의료진과 자세히 분석을 하였다.

 

CT 사진은 환자가 그 곳에서 들은바 대로 처음 진단 때와 비교하여 처음에는 전체적으로 암이 약간 줄어든 듯 보이다가 그 이후로는 큰 변화를 보이지 않았고 몇 군데 복막파종이 보이는 그런 양상이었다.

그런데 칠레에서 보내온 CT사진은, 지금은 우리나라 병원들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흑백필름에 인화한 엑스레이 사진들이었다. 현재 우리나라 병원들 거의 대부분에서 엑스레이 사진들은 모두 디지털 영상화되어 있어서 필름 인화 사진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그렇게 환자는 몇 달 간격으로 동생을 통해 검사 받은 사진들을 보내 왔고 나는 그 사진들을 이전과 계속 비교해 가며 그 내용을 동생과 본인에게 알려주었다.

 

주사약 치료를 9번 받고 난 뒤 환자는 수술을 받을 수는 없느냐고 물어 왔다. 왜냐하면 약물치료로 언제까지 계속 가야 하는지도 너무 막막하고 복막파종의 경우 엑스레이 진단만으로는 진단의 오류가 있을 가능성이 있을 뿐 아니라, 설사 복막 파종이 존재한다고 해도 모두 제거할 수 있는 기회가 혹시라도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수술을 고려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환자는 한국에 나와서 내게 수술을 받고 싶다고 하며 칠레에서 본인치료를 담당하고 있는 칠레의료진이 지금까지 본인의 치료소견을 내게 이메일로 보내도 좋겠느냐고 하였다. 보내온 그 곳 의사의 소견 역시, 일단 이 시점에서 수술을 받는 것에 환자와 같은 이유로 동의한다는 내용이었다.  환자 본인이 치료 받는 동안 대장암에 대해 많은 지식을 얻을 수 있었고 이미 그 곳 의료진과 차후 치료 방향에 대해 많은 상의를 한 터라 나로서는 환자의 제안을 거부할 이유나 명분이 없었다.

 

결국 환자는 그 동안 투여 받던 표적치료제가 상처 치료에 영향을 주지 않는 시점(혈관형성억제제는 상처 치료를 더디게 만드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을 고려하여 귀국일정을 조절하게 되었고, 표적치료제를 제외한 항암제를 두 번 더 투여 받고 나서 귀국하게 되었다.

 

지도로 보면 우리나라와 완전히 지구 정반대방향에 거주하는 환자가 고국을 떠난 지 수 십 년 만에 대장암 수술을 받기 위해 귀국하게 된 것이다. 막상 환자를 만나보니 생면부지 초면인데도 불구하고 그 동안 주고 받은 많은 CT자료들과 이메일로 인해 마치 이전부터 이미 잘 알고 있던 사람을 만난 느낌이었다.

 

환자는 성격이 활달하고 긍정적이며 쾌활하여 어찌 보면 전혀 근심걱정이 없는 낙천작인 성격의 소유자이었다.  나를 만난 그 환자는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에서 한인회 일을 맡고 있는데 그 곳 교민소식지에 나와 본인에 관한 기사도 실었다고 하며 해당 교민소식지를 나에게 기념으로 소중하게 건네주었다.

 

나는 오래 전 미국에서 장기연수를 하던 시절이나 학회로 외국에 갈 기회가 있을 때 구미나 유럽의 한인 교민소식지를 접할 기회가 많이 있었는데, 칠레의 교민소식지는 구미나 유럽보다도 더 고풍스러운 느낌이었다. 아마 칠레의 우리 교민사회가 구미나 유럽처럼 아직까지는 그렇게 활성화되지 않은 듯 싶었다.

 

기간으로 치자면 환자가 처음 칠레에서 대장암 진단을 받은 지 약 6개월 뒤인 시점에 수술이 진행되었다. 막상 수술을 하고 보니 실제로 우리가 수술 전에 CT 사진에서 보았던 것보다 실제 복막파종의 범위가 좀 더 넓었다. 나는 스텐트가 들어있는 대장암을 절제하였고 수술로 제거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의 복막파종을 제거하였다. 물론 대장암의 복막파종이, 본인이나 내가 소원하던 바와 달리 침투 범위나 그 숫자 또한 적지 않았고 또한 모두 다 제거 된 것도 아니었다.

 

수술 후 환자는 빠른 속도로 큰 문제없이 잘 회복하였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환자는 병원 예배에도 매일 참석하고 아침 저녁으로 본인 침상에 무릎 꿇고 앉아서, 곁에서 보기에도 간절함과 소망이 절절하게 묻어나는 기도와 묵상의 모습이 자주 목격되었다. 퇴원하기 전 나는 다시 한번 수술소견을 본인에게 상세히 알려주고 수술로 제거된 조직검사 자료들과 엑스레이 영상복사본 및 수술소견을 영문으로 적은 편지를 칠레 의료진에게 전달해주도록 본인에게 건네주었다.

 

환자는 퇴원하자마자 바로 칠레로 돌아 갔고 그 이후 다시 예전처럼 표적치료제를 비롯한 약물치료를 계속 받고 있다고 본인의 근황을 이메일을 통해 주기적으로 내게 알려주고 있다.

 

이 환자를 치료하면서 알게 된 흥미로운 사실은 우리나라 국민의료보험에서 보험비용 부담 적용이 되지 않는 대장암 표적치료제들이 칠레는 보험적용이 된다는 사실이었다.

 

우리나라와 2004년 자유무역협정 (FTA)을 맺은 칠레에 대한 조사를 해보니 칠레는 2011년 기준으로 국민총생산을 나타내는 GDP 기준 세계 37위인 나라이다.  같은 해에 우리는 15위로 우리나라 GDP가 칠레에 비해 4배가 넘었다. 국민 1인당 총소득도 우리나라가 칠레에 비해 1.7배나 높았다 (우리나라는 20,870달러로 세계 53위이고 칠레는 l2,280 달러로 72 위).  우리는 세계경제 GDP의 90%를 차지하는 G20에 속하는 나라이나 칠레는 G20에 속한 나라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환자는 칠레에서 대장암 표적치료제를 보험적용으로 투여 받고 있다니 한편으로는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환자가 지금 상태를 가능한 오랫동안 계속 잘 유지해 주기를 간절히 염원하는 한편, 칠레에서 보험적용이 되는 대장암 표적치료제들의 사용에 우리나라 대장암 환자들도 동일한 혜택을 받았으면 하는 바램 또한 절실하다.

 

< 건강칼럼 원문보기 http://health.chosun.com/healthyLife/column_view.jsp?idx=73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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