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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헬스조선 건강칼럼] 대장암 환자의 마지막 잎새 날짜 2013.04.24 11:45
글쓴이 운영자 조회 2131
    건국대학교병원 외과 / 황대용 교수

 

대장암 환자의 마지막 잎새

- 황대용 교수의 튼튼대장습관!

 

그 환자를 처음 만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4년 4개월 전이다. 환자는 직장암으로 진단받고 나를 찾아왔는데, 그 이전에 별다른 질병을 앓은 적이 없던 45세의 건장한 남자였다. 물론 결혼하여 부인과 슬하에 자녀들을 두고 있는 평범한 가장이었다. 당시 병의 상태는 직장암 자체가 골반에 완전히 고정되어 전혀 움직이지를 않았고, 다발성 간 전이로 인해 직장암과 간 전이 모두 제거가 전혀 불가능한 상태이었다.

 

따라서 직장암을 고착상태로부터 움직이게 하기 위한 방사선 치료와 간으로 전이된 직장암에 대한 항암제 치료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간 전이는 처음 항암제 치료에 전혀 반응이 없었고 이후 2차, 3차 항암제 치료에도 불구하고 점점 더 커져만 갔다. 다행히 직장암 자체는 방사선 치료에 의해 골반으로부터 분리가 되어 움직임이 어느 정도 생겨나게 되었다.

 

결국 가족들과 상의 후, 비용이 많이 든다고 처음에 환자 스스로 사용하기를 꺼려하였던 표적치료제를 항암제와 같이 처방하기로 하였다. 그랬더니 다행스럽게도 간 전이가 줄어들기 시작하여 처음 내 외래를 방문한지 약 1년 뒤에 직장암과 간 전이를 동시에 수술로 제거할 수 있었다. 수술 후 환자에게 약물 치료를 더 받도록 권유하였으나 경제적 이유 등으로 인해 더 이상의 약물치료를 거부하고 계속 추적진료와 검사만 받기를 원하였다.

 

다행히 그 이후 6개월 동안 재발 부위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7개월째 접어들면서 폐에 다시 다발성 전이가 생겨나 그 동안 반응이 있었던 약물들을 다시 투여하기로 하였다. 결국 폐 전이가 줄어들기 시작하였으나 투여 초기에 반응을 보이던 이 약물들도 약 6개월 치료 뒤에 약에 저항성을 보이며 폐 전이가 다시 커지기 시작하였다. 이후 환자가 원해 약 3개월을 쉬고 난 뒤 약을 모두 바꾸어 6개월을 더 투여하였는데 다행히 그 이후 더 이상 폐 전이가 더 진전되지 않는 안정상태를 보이게 되었다. 이 때 환자는 또 다시 더 이상 약물치료를 받지 않겠다며 단지 추적진료와 검사 만 받기를 원하였다.

 

이 당시 환자의 상태는 식사도 잘 하고 운동도 열심히 하여 겉만 보면 전혀 아픈 사람같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치료를 받은 그 이전보다 더 씩씩하고 활기차며 외래를 올 때마다 내게 암을 이겨낼 것이라는 자신감을 피력하였다. 이후 약 1년 2개월 간 환자는 약간의 통증 치료 처방만 받고 다른 치료는 전혀 받지 않았다.

 

그 기간 동안 환자는 본인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다른 환자들이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 바로 달려가서 따뜻한 위로와 격려를 듬뿍해 주고, 치료 동안에는 뭐든지 잘 먹어야 함을 강조하며, 다른 환자들에게 심적으로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었다. 결국 외래에서나 입원하는 환자들도 이 환자의 안부를 묻는 환자들이 점점 더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소위 병원 내에 이 환자의 팬 클럽이 저절로 생겨 나게 된 것이었다.

 

여러 가지 치료나 수술 등으로 기운이 없는 환자들이, 이 환자를 한번 만나고 나면 삶의 의욕도 솟구치고 음식도 이전보다 더 잘 먹게 되어, 그야말로 삶의 에너지를 불어 넣어주는 역할을 그 환자가 톡톡히 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 치료를 종료한지 1년 2개월이 지난 시점에 환자의 말이 갑자기 어눌해지기 시작하였다. 검사를 해보니 뇌에 직장암 전이가 다발성으로 발생한 것 때문이었다. 이후 뇌 전이에 대한 치료 및 재활 치료 등을 받다 결국 뇌 전이가 점점 더 진행되어 입원하지 약 3개월이 지난 시점에 환자는 우리 곁을 영영 떠나 버리고 말았다.

 

마지막 입원 3개월 동안, 약물 치료 없이 쉬는 기간 동안처럼 초인적인 힘으로 잘 견디어, 잠깐 동안 폐렴으로 중환자실에 들어갔었던 기간을 제외하고는 계속 병실에 입원하고 있었다. 곁에는 환자가 너무나 사랑하는 부인이 24시간 내내 지키며 지극정성으로 간호를 하였다.  뇌 전이로 인해 계속 누워만 있을 수 밖에 없는 상태와 음식을 삼키기 어려운 상태, 즉 연하 곤란으로 콧줄을 통해 음식을 주입해야 하는 마지막 약 1개월 정도의 기간은, 그 이전에 그렇게 활동적이었던 환자로서 너무나도 가혹하고 힘겹게 보이는 시간들이었다.

 

여름 장대비가 마치 폭우처럼 내리던 어느 주말 아침, 내가 회진을 도는데 간호하던 부인이 환자의 말을 전해주었다. 내용인 즉 ‘환자가 창문에 비 내리는 것을 보고 너무나 좋아하며, 내가 언제 이렇게 비가 많이 오는 것을 또 보겠느냐고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더라’고 할 때, 비가 많이 와서 무슨 일이 나지 않을까 걱정하던 나의 가슴 한구석이 멍해지는 느낌이었다. 이후 환자를 위해 제발 이 비가 그치지 않았으면 하는 잠깐의 비현실적 소망이 내 마음 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환자의 바램은 그것 말고도 두 가지가 더 있었는데 하나는 음식을 입으로 한번 맛보고 먹는 것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의식이 있을 때 고향 앞 바다를 볼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간단한 소망을 이뤄주기 위해, 부인이 우리 몰래 환자 입에 음식을 조금 넣어주었다가 폐렴이 생겨 중환자실로 옮겨서 고생을 한 적이 있었다. 따라서 음식을 입으로 맛보게 하는 것은 그 이후 엄두를 낼 수가 없었다.

 

고향 바다에 가는 일은, 마침 때가 여름 휴가철의 끝 무렵이라, 많은 피서인파로 피해 가능한 오고 가는 시간을 줄여야 환자의 고생도 덜할 것 같았다. 그래서 휴가철 절정기를 피해 환자를 앰뷸런스에 태우고 같이 고향 바다로 동행해 볼 계획을 세웠으나, 결국 여름이 채 다 지나가기도 전에 환자가 우리 곁을 떠나 진한 아쉬움이 우리 팀 모두의 가슴 속에 깊이 남게 되었다.

 

오늘 아침도 하늘에서 장대 비가 창문 밖에 억수같이 내리고 있다, 마치 그 환자의 ‘마지막 잎새’처럼!

 

< 건강칼럼 원문보기 http://health.chosun.com/healthyLife/column_view.jsp?idx=71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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