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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헬스조선 건강칼럼] 직장암 치료, 항문 보존의 길이 보인다 날짜 2015.08.05 16:23
글쓴이 운영자 조회 2543
 건국대학교병원 외과 / 황대용 교수

직장암 치료, 항문 보존의 길이 보인다
- 황대용 교수의 튼튼대장습관!

지금으로부터 지금으로부터 약 8년 전, 당시 40대 후반이었던 남성 환자가 항문에 가까운 직장(直腸)에 암이 생겼다는 진단을 받고 나를 찾아왔다. 당시 직장암은 항문에 매우 가까이 위치해 있었을 뿐 아니라 골반에 딱 붙어 움직임이 없는, 소위 유동성이 없어 수술로 절제하기 불가능한 상태였다. 복부 CT를 촬영한 결과 대동맥 주위의 림프절도 부어 있어 전신 림프절 전이 역시 의심이 되는 상태였다.

직장암은 수술 절제가 불가능한데, 다행히 그 환자는 배변에는 지장이 없어 수술이 가능하도록 먼저 방사선 치료와 항암제 치료를 시작하여 유동성이 있도록 하였다. 방사선 치료는 골반에 약 6주 동안 쏘이게 하였고 항암제 치료 역시 방사선 치료와 동시에 시작하였다. 항암제 치료는 방사선 치료 후 몇 달을 더 진행하다가 부작용인 손발 저림 증상이 심해져 더 이상 치료를 하지 못하고 중단하였다.

그런데 방사선 치료를 끝내고 약 두 달이 경과한 뒤 시행한 직장수지 검사에서, 초기에 절제가 불가능할 정도로 골반에 꼭 붙어 있던 직장암 조직이 일부 상처 조직만 만져질 뿐 암 조직의 흔적은 만져지거나 보이지 않았다. 여러 진찰과 검사에서 직장암이 사라진 것처럼 보이긴 했으나 직장암이 있던 부위 밑에 암 조직이 여전히 남아 있을 가능성과 대동맥 주위 림프절 전이 여부 등을 확인하는 차원에서 환자에게 절제 수술을 받을 것을 권하였다. 하지만 환자는 항문을 절제하는 수술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력히 거부하여, 일단 어느 정도 짧은 간격을 두고 계속 항문 진찰과 면밀한 관찰을 하는 것으로 대신하였다.

이런 경우 방사선 및 항암제 치료 후 이전에 있던 직장암 부위의 절제 수술을 시행할 것인지, 아니면 그냥 지켜볼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여러 측면에서 논란이 있다. 마침 당시 남미의 의료진들이 이런 상황에서의 치료 결과를 발표하였는데, 그들의 자료에 따르면 수술 없이 그냥 지켜보아도 별로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그들이 발표한 자료 이후 전 세계 의료진들이 지적한 바와 같이 환자 선택에 있어서 많은 편견이 개입된, 즉 속된 말로 본인들 입맛대로 결과가 좋은 환자만을 선택하여 발표하였다는 의혹으로 인해 의료계는 지금까지도 이 연구 결과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는 아니다. 즉 직장암이 방사선과 항암제 치료 등 선행 치료로 암이 사라진 경우라도 암 조직이 남아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근본적인 수술치료를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것이 일반적인 치료 가이드 라인이고 현재까지도 이 원칙이 대부분 적용되고 있다.그 후 환자는 직장 수술 대신 추적 검사와 진찰을 계속 받던 중에 우측 폐 상부에 보이던 작은 점이 조금씩 커지는 것을 확인하였다. 이 때는 처음 직장암 진단을 받고 방사선 치료를 받은 지 약 1년 6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는데 직장암의 폐 전이로 의심되었다. 환자에게 폐 절제 수술을 권유하였고 환자는 이를 받아들여 우리는 폐 절제 수술을 시행하였다.

조직검사 결과 직장암의 폐 전이로 확인이 되었다. 당시 직장에 대한 직장수지 진찰 결과는 이전과 동일하게 방사선에 의한 상처 외에 혹이 다시 자라나는 양상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폐 전이가 수술로 확인이 되었기 때문에 직장암 부위에 대한 수술을 재차 권고하였으나, 환자는 직장 수술만큼은 여전히 거부하였다. 결국 폐 전이 수술 후 다시 항암제 치료를 6개월 정도 시행하였다.

환자는 처음 직장암 진단 후 8년, 그리고 폐 전이 수술 후 약 6년 이상이 지난 지금까지도 빠짐없이 정기 진료를 받고 있는데, 매번 외래를 방문 시 직장수지 검사 등 여러 가지 검사를 하고 있으나 직장암이 사라진 상태와 동일하게 아무런 이상 소견이나 다른 장기의 전이 소견을 보이지 않고 있다.

과연 이 환자의 경우는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하는 궁금증을 갖고 있던 중, 올해 초 미국의 대장암 전문 외과 의료진이 미국임상암학회(ASCO)에서 발표한 꽤 의미 있는 자료를 접하게 되었다.

발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수술 전 방사선 치료와 항암제 치료를 받아 직장암이 모두 사라진 73명의 환자를 여러 가지 이유로 수술하지 않고 계속 지켜보았다. 그런데 이들 중 약 4분의 3은 직장암이 다시 발생하지 않았고, 나머지 4분의 1에 해당되는 환자들만 직장암 절제 수술이 필요했다. 이들 중 77%는 재발 당시 항문보존수술이 이루어졌으며, 치료 결과 역시 비교 대상 그룹과 견주어 보았을 때 차이가 없었다는 것이다. 약 3년 6개월을 추적 관찰하였는데 이들 환자들의 비교대상 그룹은 방사선과 항암제 치료 후 직장암이 모두 사라졌으나 바로 절제수술을 시행한 72명명으로, 이들과 비교했을 때 암 치료 성적의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실 이 발표의 책임연구자는 그 동안 우리가 기획한 대장암 국제심포지엄을 통해 이미 여러 번 강의와 토론을 하였기 때문에 해당 연구 결과와 관련하여 바로 그에게 만나자고 이메일을 보냈다. 그 친구는 흔쾌히 만남을 수락하였을 뿐 아니라, 기왕 오는 김에 본인 병원에서 하는 정규 컨퍼런스 시간에 1시간 정도 대장암 특강을 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제안하여 나 역시 이 제안을 기꺼이 수락하였다.

기대하였던 것 이상으로 그는 발표하였던 자료들과 연관된 많은 얘기들과 향후 전망에 대해 들려주었다. 그의 연구와 내 환자 상황과 연관된 많은 문제들에 대해서도 토의할 수 있었다. 운 좋게도 마침 방문 당일 진행된 그 병원의 대장암 외과 파트 수장의 발표와 토론을 통해 이미 그들은 발표 자료를 바탕으로 더 심도 있는 임상연구를 진행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더불어 그 밑에서 임상실험을 직접 수행하고 있는 외과 임상교수로부터 임상에서 직접 맞닥뜨리게 되는 많은 문제들에 대해 충분히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고, 올해 초 미국임상암학회에서 직접 구두 발표를 한 임상의사로부터 발표 당시 활발했던 그들의 논쟁과 토론내용에 대해서도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 날 토론에서 얻은 결론은 내 환자의 경우, 수술 전 방사선 치료와 항암제 치료로 직장암이 완전히 사라져 수술을 시행하지 않은 환자 중 4분의 3에 해당하는 직장암의 경우에 속한다는 것이었다. 비단 이 환자뿐 아니라 비슷한 치료를 이미 시행한 직장암 환자들에게서 유사한 상황들을 종종 접하게 되는데, 이들의 향후 치료방침에 대해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해지게 된 역시 이번 방문의 수확 중 하나였다.

물론 이런 치료법을 잘 적용하여 수행할 수 있는 엄격한 전제 조건은 대장암 전문 외과 의료진과 환자의 상호 노력을 바탕으로 한다. 직장의 면밀한 진찰과 검사 등의 선제조건과 추적진료를 보다 자주 받아야 한다는 상호간의 신뢰와 협조가 매우 중요하다. 의료진과 환자와의 충분한 진료시간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이번 방문을 통해 서양의 다른 의료진들이 그들 자료에 대해 반박한 내용에 대해 연구자들에게 직접 물어볼 수 있었다는 점과 발표되지 않은 치료의 노하우를 비롯한 여러 다른 얘기들을 들을 수 있었던 것 역시 또 다른 수확이었다.

지금까지 직장암은 항문을 살릴 수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가 환자나 의료진에게 항상 가장 큰 이슈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제는 내 환자의 경우와 같이 직장 수술이 필요 없는 시기가 도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는데, 이번 토론은 그런 면에서 매우 의미 있는 방문이었다. 참고로 이번에 방문했던 병원은 미국 뉴욕의 메모리얼 슬로언 케터링 암센터(Memorial Sloan-Kettering Cancer Center)로 암 치료에 있어서 세계 최고 병원 중 하나이다.

< 건강칼럼 원문보기 http://health.chosun.com/healthyLife/column_view.jsp?idx=84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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